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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을 저는 지금까지 13번 봤습니다. 같은 영화를 열 번 넘게 반복해서 본 경험은 살면서 이 작품이 처음이었습니다. 단순히 슈퍼히어로 장르를 좋아한다는 이유로는 설명이 안 되는 숫자입니다. 돌이켜보면 이 영화가 계속 저를 끌어당긴 건 두 가지였습니다. 한스 짐머가 설계한 음악의 구조, 그리고 칼-엘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칼-엘, 클라크 켄트, 슈퍼맨 — 세 개의 이름이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
《맨 오브 스틸》을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주인공의 이름이 세 개라는 점이었습니다. 크립톤에서 붙여진 칼-엘, 조너선과 마사 켄트가 불러 준 클라크 켄트, 그리고 세상이 알게 된 슈퍼맨. 이 세 이름은 단순히 같은 인물을 가리키는 호칭이 아닙니다. 각각 서로 다른 정체성(identity)을 상징하는데, 여기서 정체성이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자기 인식을 뜻합니다.
스미스소니언의 슈퍼맨 문화사 자료는 이 캐릭터를 외계에서 온 이민자이자 캔자스에서 자란 인간, 동시에 공적인 영웅이라는 복합적인 존재로 분석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맥락이 하나 더 있습니다. 슈퍼맨을 창조한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가 이민자 가정의 자녀였다는 사실입니다. 출신과 소속,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슈퍼맨 캐릭터의 출발점부터 내재되어 있었습니다(출처: Smithsonian Magazine).
《맨 오브 스틸》은 그 질문을 영화 전반에 걸쳐 정면으로 다룹니다. 칼-엘은 크립톤의 DNA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캔자스의 가치관으로 성장했습니다. 영화의 핵심 갈등은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느냐에 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다른 슈퍼맨 영화와 이 작품을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차이라고 봅니다. 초능력을 가진 영웅이 악당을 물리치는 구원 서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혈통과 양육 사이에서 자신의 선택으로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스 짐머가 트럼펫을 버린 이유
슈퍼맨 하면 존 윌리엄스의 팡파르가 먼저 떠오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 트럼펫 선율은 수십 년간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와 동일시될 만큼 강력한 음악적 서명이었습니다. 한스 짐머는 《맨 오브 스틸》 작업에서 바로 그 트럼펫을 의도적으로 배제했습니다. DC와의 공식 인터뷰에서 그는 기존 슈퍼맨 음악과 다른 음향 언어를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밝혔습니다(출처: DC 공식 인터뷰).
그가 대신 선택한 개념이 이른바 'DNA 코드'입니다. DNA 코드란 슈퍼맨의 크립톤인 유전자가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지, 아니면 인간으로 살겠다는 자유의지가 그를 정의하는지를 음악의 주제 선율로 구현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두 가지 힘이 음악 안에서 충돌하고 결국 하나의 선택으로 수렴되도록 설계한 구조입니다.
저는 이 인터뷰를 읽고 나서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음악이 완전히 다르게 들렸습니다. 서사의 배경음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던 선율이, 칼-엘의 선택이 굳어지는 장면마다 정확하게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음악이 단순한 감정 보조 장치를 넘어 서사 구조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봐야 합니다.
공식 음반에 수록된 'DNA', 'Flight', 'What Are You Going to Do When You Are Not Saving the World?'는 각각 정체성의 갈등, 자유의 발견, 영웅으로서의 일상을 대응시킨 곡들입니다. 음반을 별도로 들어도 영화의 감정 흐름이 그대로 재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2명의 드러머가 만든 물리적 충격 — 타악기 오케스트라의 설계
《맨 오브 스틸》 음악에서 제가 처음 관람 때부터 유독 강하게 남았던 건 전투 장면의 타악기 소리였습니다. 단순히 크다는 게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치고 들어오는 것 같은 감각이 있었습니다. 몇 번을 봐도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스 짐머는 이 효과를 만들기 위해 서로 다른 연주 방식과 강점을 가진 드러머 12명을 한 공간에 모아 녹음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12명이 각자 동일한 연주를 한 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스타일과 역할을 가진 연주자들이 타악기 오케스트라처럼 함께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타악기 오케스트라란 일반적으로 현악기나 관악기 중심의 오케스트라와 달리, 타악기 연주자들이 전면에 나서 음악의 리듬과 에너지를 주도하는 편성을 말합니다.
마이크 배치도 특수하게 설계됐습니다. 청자가 드러머들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도록 마이크를 분산 배치했습니다. 이 녹음 방식은 WaterTower Music의 공식 제작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여러 드러머가 동시에 연주하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이 제작 방식이 특히 효과적으로 작동한 장면은 칼-엘이 처음 비행에 성공하는 시퀀스와 조드 장군과의 전투 시퀀스입니다. 초인적인 힘을 한 명의 연주자가 아닌 집단 에너지로 표현했다는 발상 자체가, 이 영화가 슈퍼맨을 고독한 개인이 아니라 지구라는 공동체와 연결된 존재로 묘사하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드러머 12명을 한 공간에 모아 타악기 오케스트라 방식으로 녹음
- 청자가 연주자들 중앙에 위치한 것처럼 느끼도록 마이크 분산 배치
- 단일 연주자의 힘이 아닌 집단 에너지로 초인적 스케일을 표현
- 공식 음반은 DTS Headphone:X 기술을 적용해 일반 헤드폰으로도 다채널 서라운드 효과 재현
참고로 공식 디럭스판 음반은 DTS Headphone:X 기술을 적용한 최초의 영화 음반으로 소개됐습니다. DTS Headphone:X란 일반 스테레오 헤드폰을 사용하면서도 다채널 서라운드 음향을 구현하는 기술로, 극장 밖에서도 이 타악기 편성의 공간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13번을 보게 만든 건 결국 이 조합이었다
DC 유니버스는 여러 번 재편됐고 슈퍼맨도 새로운 배우와 새로운 방향으로 등장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맨 오브 스틸》이 더 선명하게 기억됐으니까요. DC는 이 작품을 헨리 카빌이 연기한 슈퍼맨과 DC 확장 유니버스(DCEU)의 출발점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DCEU란 DC 확장 유니버스(DC Extended Universe)의 약자로, 마블의 MCU처럼 여러 DC 영화들이 하나의 연속된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 체계를 말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계속 다시 보게 된 이유를 지금 와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강한 액션이 전개될 때 한스 짐머의 음악이 정확히 그 장면의 감정 온도와 맞아떨어지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 순간들이 매번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13번을 봐도 'Flight' 시퀀스에서 선율이 열리는 지점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고, 볼 때마다 같은 감각으로 반응했습니다.
이 작품을 단순한 구원 서사로만 읽으면 칼-엘이 크립톤을 포기하고 지구를 지키는 결말이 다소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출신이 아니라 선택이 자신을 정의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 결말은 칼-엘이 세 개의 이름 중 어떤 정체성으로 살아갈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순간으로 읽힙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이 영화가 반복 관람을 견디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는 볼 때마다 같은 장면에서 조금씩 다른 것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맨 오브 스틸》은 저에게 그런 영화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맨 오브 스틸 음악은 존 윌리엄스 슈퍼맨 음악이랑 뭐가 달라요?
A. 가장 큰 차이는 트럼펫 선율의 유무입니다.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팡파르와 트럼펫을 전면에 내세워 영웅의 등장을 알리는 방식이었습니다. 한스 짐머는 그 트럼펫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대신 혈통과 자유의지의 갈등을 선율 구조로 표현하는 'DNA 코드' 개념을 설계했습니다. 같은 캐릭터를 다루지만 음악이 담으려는 주제 자체가 다릅니다.
Q. 맨 오브 스틸이 DCEU의 시작 영화예요?
A. 맞습니다. DC는 공식적으로 이 작품을 헨리 카빌이 연기한 슈퍼맨과 DC 확장 유니버스의 출발점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 등 DCEU의 후속 작품들이 이 작품의 세계관을 이어받아 전개됩니다.
Q. 맨 오브 스틸 OST 음반은 어디서 들을 수 있어요?
A. WaterTower Music을 통해 공식 출시된 음반으로, 주요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디럭스판 음반은 DTS Headphone:X 기술을 적용해 일반 헤드폰으로도 다채널 서라운드 효과를 재현하도록 제작된 최초의 영화 음반이라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물입니다. 'Flight', 'DNA', 'What Are You Going to Do When You Are Not Saving the World?' 같은 수록곡은 영화를 보지 않고 들어도 감정 흐름이 전달됩니다.
Q. 칼-엘과 클라크 켄트, 슈퍼맨은 어떻게 구분해서 봐야 해요?
A. 칼-엘은 크립톤에서 부여된 이름으로 혈통과 출신을 상징하고, 클라크 켄트는 지구의 양부모에게 받은 이름으로 인간적 양육과 가치관의 형성을 나타냅니다. 슈퍼맨은 이 두 정체성을 통합한 뒤 세상 앞에 나선 공적 존재입니다. 《맨 오브 스틸》은 이 세 이름이 하나의 인물 안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결국 선택으로 귀결되는지를 서사의 중심에 둔 영화입니다.
결론
《맨 오브 스틸》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핵심은 한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선택하는가에 있습니다. 칼-엘이라는 혈통과 클라크 켄트라는 양육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슈퍼맨이 태어나고, 한스 짐머의 음악은 그 과정을 서사와 나란히 밀고 나갑니다. 저는 이 영화를 13번 봤고, 아마 앞으로도 가끔 다시 꺼내 볼 것입니다.
이 작품을 아직 보지 않은 분이라면 일반 관람보다 음악에 의식적으로 집중하면서 보기를 권합니다. 특히 칼-엘의 선택이 확정되는 장면에서 음악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따라가면, 한스 짐머가 설계한 'DNA 코드'의 의미가 선명하게 들립니다. 이미 본 분이라면 공식 음반을 따로 들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영화 없이 음악만으로도 이 이야기의 감정 구조가 충분히 전달됩니다.
참고: Warner Bros. 공식 영화 페이지 ― Man of Steel / DC 공식 영화 페이지 ― Man of Steel (2013) / DC 공식 인터뷰 ― Scoring Superman: An Interview with Hans Zimmer / WaterTower Music 공식 음반 페이지 ― Man Of Steel OST / WaterTower Music 공식 제작 영상 ― Percussion Session / DC 공식 영화 연속성 안내 / Smithsonian Magazine ― How Superman Became a Character for the Ag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