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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 (정체성, 한스 짐머, 음악)

《맨 오브 스틸》을 저는 지금까지 13번 봤습니다. 같은 영화를 열 번 넘게 반복해서 본 경험은 살면서 이 작품이 처음이었습니다. 단순히 슈퍼히어로 장르를 좋아한다는 이유로는 설명이 안 되는 숫자입니다. 돌이켜보면 이 영화가 계속 저를 끌어당긴 건 두 가지였습니다. 한스 짐머가 설계한 음악의 구조, 그리고 칼-엘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칼-엘, 클라크 켄트, 슈퍼맨 — 세 개의 이름이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맨 오브 스틸》을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주인공의 이름이 세 개라는 점이었습니다. 크립톤에서 붙여진 칼-엘, 조너선과 마사 켄트가 불러 준 클라크 켄트, 그리고 세상이 알게 된 슈퍼맨. 이 세 이름은 단순히 같은 인물을 가리키는 호칭이 아닙니다. 각..

카테고리 없음 2026. 7. 24. 14:27
미니언즈 & 몬스터즈 (무성영화, 오마주, 에드의 수어)

《미니언즈 & 몬스터즈》는 192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미니언들이 직접 영화 제작에 도전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입니다. 《슈퍼배드》 시리즈를 꽤 오래 좋아해 왔던 입장에서 이번 작품은 예상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고전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뿐 아니라, 수어를 사용하는 에드와 그에게 자연스럽게 수어로 답하는 미니언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았습니다.1920년대 할리우드, 미니언들이 영화에 빠진 이유혹시 무성영화를 직접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학창 시절 교양 수업에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를 처음 봤습니다. 대사가 거의 없는데도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만으로 상황이 전달돼 눈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그 경험 때문인지 《미니언즈 & 몬스터즈》의 초기 할리우드 장면에서도 무언가 낯익은 감각이 ..

카테고리 없음 2026. 7. 19. 18:32
셰이프 오브 워터 (교감, 타자성, 냉전 배경)

솔직히 저는 로맨스 영화라면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을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인간 여성과 수중 생명체 사이의 사랑 이야기라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렇게 애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강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이 영화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지,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말없이도 통하는 교감, 이 영화의 출발점일반적으로 사랑 이야기라고 하면 대화, 고백, 설득의 과정이 중심에 놓인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공식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주인공 엘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수어(手語)로 의사소통하는 여성입니다. 수어란 ..

카테고리 없음 2026. 7. 15. 17:19
가여운 것들 (이입, 통제, 자유)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기괴한 설정의 예술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베네치아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건 알았지만, 제가 이 정도로 깊이 이입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가여운 것들》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여성이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이야기인데, 보는 내내 제 과거의 어느 시절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이입: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들영화의 중심인물 벨라 백스터는 천재 외과의사 고드윈 백스터에 의해 재생된 존재입니다. 성인의 신체를 가졌지만 언어와 인식은 갓난아이에 가까운 상태에서 출발하는데, 이 설정이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저는 생각을 바꾸게 됐습니다.이 영화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개념이 바로 타뷸라 라사(Tabula Rasa)입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6. 7. 13. 23:03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퀴어 로맨스, 교환일기, 영화음악)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1999년 개봉한 한국 공포영화입니다. 하지만 김태용 감독은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여성영화이자 퀴어영화로 받아들여주길 바랐다고 말했어요. 제목만 보고 귀신이 등장하는 무서운 영화를 예상했던 저는 영화가 끝난 뒤 오히려 효신과 시은의 얼굴을 더 오래 떠올리게 됐습니다. ※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복도는 학생들이 매일 오가는 평범한 공간인데, 이 영화에서는 유난히 비어 있고 낯설게 느껴졌어요. 사람이 많은 학교 안에서도 인물들이 각자 고립되어 있다는 분위기가 이 장면에 잘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공포는 귀신이 갑자기 나타나는 순간보다, 익숙한 학교가 어느 순간 쓸쓸하고 낯선 공간으로 변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

카테고리 없음 2026. 7. 13. 22:17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장편 데뷔작, 팀플레이, 베네치아)

캐나다 퀘벡 영화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는 제목부터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2023년에는 제80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기간에 열린 독립 병행 섹션인 제20회 지오르나테 델리 아우토리에서 GdA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저도 잠깐 멈췄습니다. 이렇게 긴 제목을 가진 뱀파이어 영화라니,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뱀파이어 영화지만 공포보다 블랙코미디에 가깝다뱀파이어 장르라면 보통 무엇을 기대하시나요? 저는 처음에 어두운 성과 무고한 희생자, 피 냄새가 가득한 공포 분위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예고편을 재생하는 순간, 낯선 프랑스어 대사와 함께 잔잔하고 엉뚱한 분위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뱀파이어 영화와는 ..

카테고리 없음 2026. 7.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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